이 글은 월간 전원생활에 연재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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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지어야지 마음을 먹고 나면 보통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인터넷 검색이나 서점에서 책을 찾아보는 것이다. 인터넷에는 멋진 사진이 넘쳐나고, 서점에는 집짓는 데 얼마 든다는 책부터 닮고 싶은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까지 관련 책들이 많기도 하다.

 

인터넷이나 책에서 본 사진들은 깔끔하고 단정하다. 가구는 집에 꼭 맞춘 듯 하고, 너저분한 짐들은 보이지도 않는다. 책들은 흔히 '미니멀 라이프'라고 하는, 단정하고 소박한 삶을 예찬한다.

문득 돌아본다. 우리 집에는 내가 눈을 두는 곳곳마다 짐들이 박혀 있다. 식탁 위에는 싱크대에 미처 다 올려두지 못한 가전제품들이 있고, 과일도 과자도 널려 있다. 베란다에는 시래기를 널어놓았고, 옷 방에는 계절을 넘긴 옷들이 이쁘지도 통일되지도 않은 상자들에 담겨 곳곳에 밀어넣어져 있다. 가장 미니멀하지 못한 곳은 냉장고와 창고다. 냉동실에는 언제 넣어 두었는지도 모를 고기와 생선들, 나물들이 쟁여져있고, 냉장고는 세 개나 있지만 빈자리가 없다. 한숨이 나온다. 그리고 중얼거리게 된다. 좀 줄이면서 살아야 할텐데.

 

 

집은 삶을 담아내는 그릇.

 

흔히 집은 '삶은 담아내는 그릇'이라는 표현을 쓴다. 명망있는 선비나 학자였던 선조들은 집을 통해 본인들의 철학을 완성시키고, 신념대로 살기 위한 도구로 집을 생각하기도 했다.

 

우암 송시열은 말년에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한 강학당을 세우고 ‘남간정사’(南澗精舍) 라 이름붙였다. 남간정사의 ‘남간’은 주자의 시구인 ‘운곡남간’(雲谷南澗)에서 따온 것으로, 볕바른 곳에 졸졸 흐르는 개울이라는 뜻이다. 남간정사는 개울이 흐르는 집이라는 이름 그대로 집 뒤편 샘에서 흘러나오는 물의 물길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지어져 있다. 송시열은 성리학자였는데, 주자를 신앙으로 삼을 정도의 주자학 대가였고, 율곡의 학통을 계승한 학자였다. 율곡 성리학에서의 세계관인 ‘이기일원론’은 “이와 기는 혼연하여 사이가 없고 서로 떨어지지 않으므로 다른 물건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하여 그가 지은 남간정사는 그가 평생 말하기도 했던 이 이기일원론적 세계관을 투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통제 가능하고 원칙을 따른 ‘리’와 통제하기 힘들고 근원적인 자연이라는 ‘기’가 한 곳에 모여 서로 통하게 하였으니 말이다.

 

우암 송시열이 본인 철학의 세계관대로 집을 지었다면, 본인의 철학을 공간을 통해 삶으로 완성하고자 한 이는 퇴계 이황라고 할 수 있다. 퇴계는 말년에 도산서당을 지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도산서원은 퇴계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제자들에 의해 창건된 것이고, 도산 서당은 조그마한 기와 삼간집이다. 이 집을 보고 있으면, 세상과 자연에는 한없이 다정하고 포용력이 있었지만 스스로에게는 매우 엄격했던 수도자의 삶이 보이는 듯하다.

주로 제자들을 가르쳤던 마루방에는, “학문에 대한 자신을 오래도록 갖지 못했으나 이제 바위에 깃들여 조그만 효험이라도 바란다.”는 주자의 말에서 따와 ‘암서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곳에서 학문에 대한 겸손한 자세를 제자들과 스스로에게 되새겼으리라.

사색과 연구를 했던 방은 주자의 “완상하여 즐기니 족히 평생토록 지내도 싫지 않겠다”라는 글에서 이름을 따와 ‘완락재’라 하였다. 심지어 기와대문도 아닌, 나지막한 싸리나무 문에도 ‘유정문’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 역시 주역에서 따온, 선비는 마음을 곧고 올바르게 가져야 길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방과 마루에서 내다보면 바로 보이는 네모난 연못에는 ‘정우당‘(淨友塘), 즉 맑은 친구라는 이름을 붙이고 연꽃을 심어, 진흙에서도 더럽혀지지 않으며 줄기는 곧고 향은 맑은 연꽃을 닮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정우당 너머 화단에도 ’절우단‘이라 이름짓고 매화, 대나무, 국화, 소나무를 심어 4계절을 달리하는 벗을 두었다 한다.

이 집에서 살면서 그 공간들의 이름들을 부르고 드나들다 보면, 스스로가 늘 말해왔던 철학을 벗어나 살기가 오히려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퇴계는 유학자이자 스승으로서 본인의 삶을 완성하려 하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다.

 

 

삶의 철학을 집에 담아낸 선인들과 우리 집

 

앞서 예로 들었던 선조들의 경우는 철학자이면서 수도자였고 스승이었다. 우리처럼 매일을 잘 먹고 살기 위해 애를 쓰는 생활인이라 보기는 어렵다. 앞서의 예에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거창한 철학을 갖자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담아내는 공간으로 집을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우리네 범인들에게 꿈이나 소망이란 퇴계나 우암처럼 큰 철학을 완성하는 것이기 힘들다. 그들은 말년에 철학의 완성, 삶의 완성으로 집을 지었지만, 우리에게 집을 짓는 것은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가족이 꾸는 꿈, 우리 가족이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작고 소박한 집만이 좋은 것인가.

 

상담을 하다 보면, 본인들이 큰 공간, 큰 창고공간을 원하고, 갖고 있는 짐도, 앞으로 갖게 될 짐도 많다는 것을 머뭇거리며 이야기하는 경우가 꽤 있다. 냉장고가 네 개라는 것을 이야기하며 부끄러워한다.

왜일까 이야기를 해 보면, 이전에 찾아보았던 책들과 정보들 때문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체로 전문가를 만나 사기를 당하지 않을까 겁이 나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대체로 그렇게 이것저것 찾아보고 나서 건축가를 찾거나 공사업체를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공부를 하다 보면 생각하게 된다. 소박하고 작은 집, 미니멀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 좋은 것이고 옳은 것이라고. 그런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는 살지 못할 것 같으니, 사실 나는 나쁜 아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처럼 머뭇거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겨울에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곳도 많다. 반면 여름에는 40도 가까이 기온이 치솟는다. 이런 환경에 사는 우리가 정말 최소한의 짐만 갖고 살 수 있을까 싶다. 여름에는 선풍기, 에어컨이 필요하고, 겨울에는 난방기구가 필요하다. 옷도 신발도 계절별로 다 있어야 하고, 이불도 계절별로 다른 것이 필요하다. 음식도 겨울에 구할 수 있는 음식과 여름에 구할 수 있는 음식이 다르다. 어떤 것은 구할 수 있을 때 구해서 말려놓거나 얼려놔야 한다. 농어촌이나 산촌에서는 이야기가 더 많아진다. 계절별로 쓸 수 있는 공구나 기구도 다르고, 밭이나 과수원에서 수확한 것들도 저장해둬야 한다. 도시에 사는 가족들이 행여 방문이라도 하게 되면 손에 들려 보낼 것들도 좀 챙겨놔야 마음이 편한 것이 우리네다.

 

그렇다고 넓고 수납공간이 많고, 창고 하나쯤은 당연히 있는 집이 정답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삶의 방식과 우리 가족이 원하는 삶에 맞는 집이 좋은 집이라는 이야기다. 남들이 이야기하는 좋은 집, 훌륭한 공간, 멋진 철학이 우리에게 불편하기만 하다면 그것은 이미 좋은 집이 아니다.

 

 

집을 지으려는 이유를 찾자

 

우리 가족에게, 내게 필요하고 좋은 집을 짓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를 알아야 한다. 번지르르한 남들의 철학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철학과 꿈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집을 짓겠다고 결심하기 전에 가장 중요한 할 일은, 왜 집을 지으려 하는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집을 지으려 하는 이유에 따라 집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집 안팎에서 마음껏 뛰놀게 하고 싶어 집을 짓는 가족과, 자연을 벗 삼아 다도와 취미생활을 즐기고 싶은 가족의 집은 다를 수밖에 없다.

 

집을 지으려하는 이유를 찾았다면, 그 다음 할 일은 우리 가족이 원하는 삶을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처음부터 모두 모여 이야기해보는 것보다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가족 구성원이 각자 새로운 집에서 원하는 삶에 대해 적어보거나 그려보는 것이 좋다. 가족이지만 서로 생각하고 원하는 것은 매우 다르고, 이 과정에서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거나 의외의 면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 후 그것들을 취합해보면, 우리 가족이 꿈꾸는 삶에 대해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오게 된다. 가능하다면 새 집을 짓기 위한 동네도 이런 이야기를 해본 이후에 찾아보는 것이 좋다. 집 뿐 아니라 살게 될 마을도 삶의 방식이나 생활에 매우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는, 추상적이었던 꿈과 바람을 구체화시켜 필요한 공간과 원하는 부분들을 정리하고, 그것들의 우선순위를 정리해야 한다. 우리는 보통 정해진 예산 안에서 집을 지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반드시 포기할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우선순위를 미리 정해두면, 매번 포기할 때는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고민을 덜하게 된다. 보통은 처음 생각했던 집을 짓는 이유가 되었던 것을 가장 우선순위에 놓고 제일 먼 것부터 포기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잡지 사진보다 멋진 우리 집

 

우리 가족이 원하는 삶과 필요한 공간을 잘 정리하고, 마음 맞는 건축가를 만나 그것을 충분히 담아낸다면 그것으로 그 집은 그 무엇보다 훌륭한 집이다.

비록 냉장고가 다섯 대고, 가구들은 통일되지 않고, 짐은 곳곳에 꽉꽉 들어차 있지만, 그래도 잡지에 나오는 멋진 집보다 우리 가족의 삶을 제대로 담아낸 집이 더욱 좋은 집이라고, 그리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집이 지어지는 것을 보며 퇴계처럼, 우리 가족들의 꿈과 바람을 모아 집의 이름을 붙여보는 것도 좋다. 살면서 가끔은 틀어지더라도, 조금은 더 처음에 원했던 바대로 살아가려 하게 될 테니 말이다.

 

설계를 하고, 건축방송을 하고, 건축교실도 진행하면서 많은 이들을 만나왔다.

그리고 첫 이야기로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

 

당신은 늘 옳지는 않지만, 틀리지 않다.

 

당신이 진정 원하는 집은 당신에게 늘 옳다.

 

 

장서윤 (디자인랩소소 건축사사무소 소장)

중앙대에서 건축학 학사 및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몇 년의 실무 후 영국 런던 AA School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실무경험을 더 쌓고 2012년 디자인랩소소를 개소하였다. 본 업무 외에도 학교에 출강하고, 건축 팟캐스트, 일반인을 위한 건축교실을 통해 집짓기를 조금 더 쉽게 소개하는 일을 계속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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